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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3호심리4분조회 32

발행 · 잡학서고 별관

시계를 힐끗 보면 초침이 잠깐 멈춘 것 같아요

고장 난 시계도 아닌데 첫 1초만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연한 회색 벽에 걸린 숫자 없는 둥근 시계와 나무 책상 위 머그잔과 공책

아날로그 시계를 힐끗 봤을 때 초침이 잠깐 멈춘 것처럼 보이는 건 시계가 아니라 뇌가 만든 착시예요. 눈이 시계로 옮겨 가는 짧은 순간을 뇌가 메우면서, 처음 본 1초를 실제보다 길게 느끼게 돼요.

눈이 움직이는 동안의 빈틈

우리 눈은 한곳을 보다가 다른 곳으로 툭툭 건너뛰듯 움직여요. 시선이 옮겨 가는 시간은 0.1초 안팎으로 짧은데, 그동안 보이는 흐릿한 장면은 뇌가 거의 지워 버려요. 그래서 눈을 돌려도 세상이 번져 보이지 않아요.

대신 그 빈틈을 그냥 비워 두지는 않아요. 눈이 도착한 곳의 모습을 시선이 출발하던 순간부터 보고 있었던 것처럼 앞당겨 붙여요. 시계를 보면 이 시간이 초침의 첫 1초에 덧붙어서 유난히 길게 느껴져요.

실험으로 잰 착시

영국 런던대 연구팀은 2001년 「네이처」에 이 착시를 잰 결과를 실었어요. 참가자가 눈을 옮겨 숫자판을 보게 하고, 처음 보인 숫자가 뒤이은 1초짜리 숫자들과 같은 길이로 느껴지는 때를 찾았어요.

그 결과 실제로는 0.8~0.9초만 보여도 1초로 느꼈어요. 시선이 더 멀리 움직여 시간이 더 걸리면 착시도 그만큼 커졌어요. 연구팀은 이 일이 눈을 움직일 때마다 일어나지만, 초침처럼 시간을 재는 기준이 있을 때만 눈치챈다고 설명했어요.

건전지 탓일까요

초침이 멈춘 듯 보이면 시계 건전지가 다 됐거나 내가 잠깐 멍해졌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둘 다 아니에요. 오히려 눈이 평소처럼 잘 움직였다는 표시에 가까워요.

비슷한 일은 귀에서도 일어나요. 전화 연결음을 기다리다 다른 데 신경 쓴 뒤 다시 귀를 기울이면, 다음 연결음까지의 조용한 틈이 길게 느껴져 전화가 끊긴 줄 알기도 해요. 2002년 영국 연구팀은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주의를 옮길 때 이런 착시가 생긴다는 걸 실험으로 보였어요.

제대로 확인하려면

시계가 정말 멈췄는지 알고 싶다면 첫 칸은 빼고 두세 칸 더 지켜보세요. 두 번째 칸부터는 착시가 사라져 초침이 원래 박자대로 움직여요. 눈을 옮기지 않고 처음부터 시계를 보고 있었다면 첫 칸도 평소 박자로 보여요.

직접 느껴 보고 싶다면 초침이 있는 시계를 시야 한쪽에 두고 다른 곳을 보다가 시계로 눈을 휙 옮겨 보세요. 폰 화면의 초 단위 숫자로 해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어요.

초침이 멈춘 듯한 첫 1초는 시선이 옮겨 가는 동안의 빈틈을 뇌가 메워서 생긴 착시예요. 정말 멈췄는지는 두세 칸 더 보면 알 수 있어요.

정리·참고 메모 · Yarrow 외 2001, Nature. 눈을 옮긴 뒤 처음 본 자극을 길게 느끼는 착시를 확인(0.8~0.9초를 1초로 느낌, 시선 이동이 길수록 큼). 귀의 비슷한 착시는 Hodinott-Hill 외 2002. 개인차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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